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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일류대학 도약·수도권 일극 타파…이광형의 'KAIST 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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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2 09: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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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 초대석]의전원 설립해 '연구하는 의사' 육성·'마이크로 학위'로 AI·반도체 인력 공급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사진=김휘선 기자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사진=김휘선 기자

"대전-세종-오송을 이어 혁신기술이 비즈니스로 구현되는 '스타트업 월드'를 구축하겠다."

이광형 제17대 카이스트(KAIST) 총장의 당찬 포부다. 취임 144일째인 지난달 29일, 카이스트 서울도곡캠퍼스에서 이 총장을 만났다. 그의 취임 일성은 '개혁과 도전'이었고, 이를 위한 밑그림들은 이 기간 보다 구체적인 전략들로 무장해 하나둘 시동이 걸린 상태였다.

교학 부총장 시절부터 지역과학기술·스타트업 육성을 통한 첨단산업 혁신성장생태계를 기획해 온 그는 총장 취임 후 숙원사업으로 '충청형 실리콘밸리' 카드를 꺼내 들고 'K-NEST(혁신둥지전략) 프로젝트'를 빠르게 현실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술응용·상용화 촉진을 위한 개방형 혁신창업생태계 조성부터 창업을 연계한 교육·주거·문화공간이 어우러진 복합생태계 조성까지 충청형 실리콘밸리 구축을 위한 청사진이 담겼다. 이 프로젝트가 우리 경제·사회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 속에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지 이 총장을 만나 들어봤다.

-올 상반기 벤처투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제2 벤처붐'이 불고 있다. 무엇이 촉매제가 되고 있다고 보는가.
▶그 동안 시중에 풀린 유동자금이 벤처투자 쪽으로 많이 흘러 들어갔고, 지난 정권에서부터 벤처·창업생태계를 고치려고 조금씩 애를 썼던 게 누적이 되면서 창업 열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어떤 노력을 뽑을 수 있다.
▶'연대보증 폐지'를 꼽을 수 있다. 연대보증제도는 사업자의 실패가 과도한 채무와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해 창업과 재도전을 하려는 기업인들에게 큰 장애요인이었다. 5년 전 만해도 너무 당연했던 연대보증이 지금 얘기하면 '원칙적으로 안 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정부가 기술금융, 신용보증 등 정부 투자기금이 들어가는 건 연대보증을 못하게 막았고, 2018년부터 단계적 전면 폐지 절차를 밟아가면서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선 최근의 분위기를 보며 2000년대 초반 IT 버블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 정도로 걱정할 만큼 아직 붐이 일어나지 않았다. 제 느낌상 그때의 절반도 안 된다. 그 동안 워낙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최고 신랑감이 벤처기업인이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나는 오히려 지금이 그때처럼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벤처 성공률은 겨우 10~20%다. 나머지 80%가 나가 떨어진다. 그걸 알면서 하겠나. 약간은 꿈이, 거품이 있어야만 한다. 그저 '리얼리티'로 하겠다? 시작도 안 해보고 다 접을 거다. 창업은 결혼과 비슷하다. 완벽하게 다 갖춰놓고 하는 게 아니다. 결혼할 때 이것저것 다 따지면 못한다. 벤처도 그런 거다.

-취임식 때 '1랩1벤처'를 강조하셨다. 카이스트는 이전에도 창업을 많이 하지 않았나.
▶기대에 못 미친다고 보는 거다. 카이스트는 세계 무대로 나가면 일류대학에 못 들어간다. 기업도, 운동선수도, 음악·영화계에서도 다 일류가 있다. 그런데 대학은 없다. 카이스트가 일류가 되려면 교수직원·학생들이 연구한 것을 사업화해서 보람도 느끼고, 국가·사회에 기여 하고, 그것이 또 돈이 돼 다시 학교로 들어와 재정적으로 자립하는 선순환 구조의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전 세계 일류대학 주변에 창업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하버드대,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 등 세계 최고의 대학이 위치한 보스턴에 가면 바이오 기업들이 우글우글하다. 카이스트도 그래야만 한다.

-최근 대전·세종에 'KAIST 창업지원센터'를 개설하겠다고 하셨다.
▶스탠포드나 칭화대 등 우수 거점대학은 지역과의 협업을 통해 각각 실리콘밸리, 중관춘 등의 창업단지를 조성하는 주축이 됐다. 대전·세종시에 창업지원센터를 만들어 우리가 그동안 터득했던 창업 지원 노하우, 기술 지원, 벤처캐피털 연계 등의 재능기부를 할 것이다. 허태정 대전시장님이 창업지원센터를 개소할 공간을 내주셨다. 앞으로 수도권 외 지역의 창업생태계 성공 사례, 혹은 본보기를 제시할 거다.

-이도 'K-NEST' 프로젝트의 일환인가.
▶그렇다. 우리나라는 일극체제로 가고 있다. 수도권에 너무 편중돼있다. 지역 스스로 자립한 산업생태계 모델이 없다. 카이스트가 있는 지역엔 기술, 인재가 있고 여건도 좋다. 여기서 혁신생태계 성공스토리를 완성하면 부산, 광주 등 전국으로 확산될 거다. 결국 대한민국 전체를 바꾸는 일인 셈이다.
-K-NEST 프로젝트엔 '과학기술의과학 전문대학원' 설립도 포함됐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COVID-19) 백신도 못 만들고 처량한 신세 아닌가. 신약 개발은 혼자하는 게 아니라 팀이 하는 거다. 화학자, 생물학자, 의사 등 여러 분야에 사람들이 종합적으로 팀을 이뤄야 연구결과물이 나온다. 축구로 말하면 포드, 윙, 골키퍼, 센터 등 각 포지션을 맡은 선수들이 있는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 바이오 신약 개발팀에 하나의 포지션이 비워져 있다. 바로 의사다. 축구로 치면 센터다. 전체 코디네이터를 하는 역할이 빠진 것이다. 의사가 있어야 의료데이터를 다루고 병원과 연계해 실험도 한다. 바이오 생명과학과 이를 통한 창업이 대세가 돼가는 지금 의전원을 추진해 효과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의대 정원이 연 3000명인데 의과학자가 부족 현상이 심화된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가 10여 년 전부터 연구하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며 장학금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만들었다. 그런데 아무도 신청을 안 한다. 몇 푼 받느니 나가서 돈 버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다. 임상진료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과 극명히 비교되는 현상이다. 신약과 신의료기술 개발 분야에서 뒤쳐지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 현실이 있는 데 과기의전원을 만든다고 해서 기대한 성과가 나오겠나.
▶카이스트에 오는 학생들은 의대도 갈 수 있는 인재들이다. 그런데 카이스트를 택했다. 이 학생들은 그저 연구하는 게 재미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공부를 함께 하다 보니까 그런 환경 속에서 그 길로 가게 된다. 그저 연구하는 동네에서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을 뽑는거다. 과기의전원엔 레지던트 코스가 없다. 또 10년간 임상을 못하게 막아 놓을 것이다.

-의과학자뿐만 아니라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IT 전문인력난도 심각하다.
▶삼성도 일할 사람 없다고 난리다. 그런데 주변에 보면 그냥 노는 인력들이 많다. 이 같은 미스 매칭의 책임은 대학에 있다. 대학에서 사회가 필요한 인력을 길러줘야 하는데 이는 무시한 채 공급자가 원하는 인력을 기른 것이다. 지금도 졸업하는 순간 실업자가 되는 특정 학과가 많다. 그런데 정원을 못 줄이게 한다. 정부는 대학 총장이 알아서 조절하라고 떠넘기고, 대학 총장은 그 사람들이 드러눕고 반대하니 쉽게 결정을 못내린다. 한국 대학은 정원에 얽매여 충분한 인재를 공급 못하는 게 현실이다.

-개선 방법은.
▶일반대학은 과별로 정원이 따로 정해져 있지만 카이스트는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과를 택하는 무학과 제도를 운영 중이다. 학생이 희망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다. 대학이 경직성을 버리려는 변화를 우선 시도해야 한다. 학생들의 전공 선택 경향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 규모가 투영돼야 한다.

인력난 해소를 위해 내년에 1년짜리 미니 석사과정인 '마이크로 학위' 제도를 도입·운영할 계획이다. 전문인력을 속성으로 길러내는 과정이다. 기초 소양이 갖춰진 이공계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1년의 교육과정을 이수토록 해 급한 불(인력난)은 끄고 실업자도 구제하게 될 거다. 처음엔 반도체, 인공지능 분야로 총 100명 규모로 해볼 계획이다.

-K-NEST 프로젝트의 비전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가장 큰 산은 규제일 것이다. 직원 8000여명에 드론(무인기) 분야 전 세계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중국 DJI는 홍콩과기대 전자공학과 출신 대학원생이 만들었다. 카이스트에서 드론 날리면 경찰에 잡혀간다. 규제 때문에 제대로 시작을 못해서 몇 십 만 개 일자리를 잃고, 엄청난 시장을 놓쳤다.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도 마찬가지다. 원격진료 때문에 발 묶여 몇 십 만개 일자리가 날아가게 생겼다. 이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미래지향적으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줘야 한다. 리더십은 끌고 나가는 거다. 말썽 안 생기게 구성원들이 좋아하는 데로 다수결로 가겠다는 건 리더십이 아니다.

머니투데이
  • 대담=임상연 미래산업부장, 정리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73013490922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