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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IST창업원]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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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1 08: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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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이 혁신 제품 썼다고 감사받을까 걱정해서야”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60〉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대담



지난달 8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심포지엄의 대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과학기술의 사업화를 막는 것이란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2000년 개봉한 미국의 재난영화 제목이다. 경제에선 복합적 악재가 한꺼번에 터져 일어나는 심각한 글로벌 위기를 뜻하는 용어다. 국내 혁신 스타트 업계가 요즘 ‘퍼펙트 스톰’을 말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어지는 경제 위기로 투자시장이 얼어붙은 데다, 내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까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R&D에 기반을 둔 혁신기술 스타트업에게 관련 예산의 전례 없는 삭감은 재앙에 가깝다. 지난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심포지엄’에선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와 투자기관·교수·창업지원기관 대표 등이 모여 ‘한국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사업화를 막는 것들’이란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배현민 KAIST 창업원장(사회), 스타트업 에스그래핀을 이끄는 이관형 서울대 교수, 스타트업 포인투테크놀로지의 박진호 대표, KAIST 홀딩스의 차정훈 대표, 『축적의 길』 저자인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4대 과학기술원의 기술지주인 미래기술지주의 김판건 대표, 정부 출연연구소들의 기술지주인 한국과학기술지주의 최치호 대표, 액설러레이터 펜벤처스의 송명수 대표가 그들이다. 이날 진행된 대담 주요 부분을 소개한다.



배현민 KAIST 창업원장


물건 사주는 것이 가장 큰 지원

▶배현민 KAIST 창업원장=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을 위한 생태계 구축에는 무엇부터 필요할까.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혁신창업 기업은 공공 부문과의 연결이 중요하다. 초창기 혁신 단계에 있는 ‘딥테크(deep tech)’ 스타트업들은 매출을 일으키는 데 어려움이 많다. 미국의 경우 국방 등 공공부문의 문제를 해결할 때 딥테크 스타트업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채택한다. 이를 통해 스타트업에 스케일업(규모 확대)의 기회를 준다. 안타깝게도 우리 공공부문은 혁신적 제품을 먼저 썼다가는 바로 감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민간이 다 사고 난 뒤에야 겨우 움직인다. 최근 국방부가 KAIST와 손잡고 인재를 키운다고 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방부문에 투자되는 수십조원의 예산 중 일부라도 혁신 스타트업 제품에 썼으면 좋겠다. 국방뿐만 아니라 환경·교육·에너지 등 여러 분야에서 각 부처가 수십조원씩 예산을 쓰고 있는데, 여기에 혁신 스타트업들이 만든 솔루션이 활용돼 뜀틀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그 어떤 지원보다 물건을 사주는 것만큼 스타트업들에게 도움 되는 것은 없다.

▶배현민=우리 정부는 외국에서 안 쓰는 것을 처음 도입하는 데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공공부문이 먼저 과감하게 우리 기술을 써 본다면 혁신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실제 투자자 입장에서 국내 딥테크 스타트업의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플랫폼 산업까지 지원할 필요 있나

▶김판건 미래과학기술지주 대표=미래과학기술지주는 KAIST를 비롯한 4대 과학기술원에서 나온 기술을 위주로 104개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들의 총 기업 가치가 2조 5000억원 정도 된다. 투자 대상 스타트업들을 보면서 ‘이런 게 바로 세상을 바꿀 만한 기술’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최근 국내에 많은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정부의 지원은 혁신 스타트업과 그렇지 않은 곳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플랫폼 비즈니스는 ‘제로섬(zero-sum) 게임’에 가깝다. 특정 배달 플랫폼이 잘되면 기존 산업군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 그런 예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에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여기에 굳이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나. 우리나라 창업 생태계는 세계 10위권이다. 그런 스타트업들은 내버려 둬야 한다. 모태펀드를 운영하는 한국벤처투자의 돈은 모두 딥테크 창업에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제대로 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밀도도 중요하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바이오 클러스터가 16개에 달한다. 이게 말이 되나. 미국도 보스턴과 샌디에이고 등 바이오 클러스터가 몇 곳 없다. 우리는 정부가 돈을 분산하다 보니까 집중이 안 돼 한 곳도 제대로 발전을 못 하고 있다.

▶배현민=제로섬 게임이 되는 투자는 국가 세수 증대 차원에서도 효과가 없다. 반면 딥테크 투자는 세계 시장 진출과 국가 GDP 상승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스타트업의 목소리도 직접 들어보자.

▶박진호 포인투테크놀로지 대표=스타트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됐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인력 수급이다. 학교를 막 졸업한 젊은 사람도 필요하지만, 기술을 사업화하려면 경험 있는 우수 인력들이 필수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면 해외 경험이 있는 인력이 필요한데, 인건비 차이가 너무 커 현실적으로 뽑을 수가 없다. 스타트업에서 일할 외국인들이 영주권을 보다 쉽게 취득하고, 소득세 감면 혜택도 장기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 줬으면 좋겠다.
 

규제 샌드박스 더 확대해야
                                

▶배현민=규제 또한 기술 창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 출연연구소 쪽 의견을 듣고 싶다.

▶최치호 한국과학기술지주 대표=한국과학기술지주는 KIST 등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 연구소들이 출자해 만든 기술지주 회사다.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를 깎아 먹고 있는 게 바로 규제 환경이다(한국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3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28위를 기록했다. 2021년 23위, 22년 27위로 2년 연속 순위가 떨어졌다). 원래 딥테크 신기술 분야는 규제 지체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긴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규제체계는 열거된 것들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시스템이기 때문에 혁신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다. 할 수 없는 것 외엔 원칙적으로 다 허용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미국이나 중국처럼 바뀌어야 한다. 또 하나, 식품의약 규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 FDA(식품의약처)는 규제가 혁신성장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는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기술·산업별로 만들어진 중복 규제가 매우 많다.

▶배현민=우리나라는 규제가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나라다. 규제가 허용한 것들은 돈을 벌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돈을 벌 수 없다. 외국은 어떤지 궁금하다.

▶송명수 펜벤처스 대표=저는 한국 스타트업들의 해외 진출를 돕고 있다. 업무 성격상 다양한 부분에서 법률 수요가 많다. 그래서 로펌을 하나 차리고 싶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변호사가 아니면 원래 로펌을 설립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은 네바다 등 몇 개 주에서는 샌드박스 제도처럼 규제 예외를 둬 변호사가 아닌 사람도 로펌을 할 수 있게 한다. 한국에서도 요즘 샌드박스가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R&D 투자, 한번 줄이면 회복 힘들어
 

▶배현민=에스그래핀의 경우 서울대 교수 창업 사례인데, 어떤 어려움이 있나.

▶이관형 에스그래핀 대표=우선 창업을 마음먹기가 어려웠다. 창업이란 게 어떻게 보면 ‘투잡’을 뛰는 거다. 서울대의 경우, 창업했다고 강의를 줄여준다든가 보직을 면하게 해주는 제도적인 혜택이 없다. 창업한다는 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고, 특정 기술로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경제에 이바지하는 거다. 저는 이것도 공대 교수의 책임이고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 가치를 학교에서 알아주고 제도적으로 지원해줬으면 한다.

▶배현민=내년 국가 R&D 투자가 줄어드는 것은 혁신창업 기업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이정동=몇 년 전 어떤 기업을 보면서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연구소를 잘 운영하던 곳인데, 경기가 좀 어려워지니까 연구소를 없애고 연구원들을 모두 현장으로 내보냈다. 리더의 마음이 갑자기 변한 거다. 그리고 몇 년 뒤, 다시 기술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며 연구소를 꾸렸는데,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한 해 기분 내서 왕창 투자했다가 다음 해에는 전혀 투자하지 않는 퐁당퐁당식 기업보다 적은 금액이라도 꾸준하게 투자한 기업이 결과적으로 기술 역량도 더 높았고, 위기 이후에도 더 잘 살아났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야말로 R&D와 혁신창업에 가장 치명적인 어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정리=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공공부문이 혁신 제품 썼다고 감사받을까 걱정해서야” | 중앙일보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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